'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05 안중근 평전
  2. 2008/02/11 약산 김원봉 평전
  3. 2005/08/15 단재 신채호 평전

● 시대의창 리뷰

 고결한 삶을 살다 간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올해(2009년)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토살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다. 그리고 내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적 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천하에 떨친 그의 행적이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되어온 탓이다.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인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다시 안중근일까.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공동체 EU와 같은 기구를 100여 년 전에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를 ‘지나간 미래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끝맺지 못한 논설《동양평화론》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모습 등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역사적 사료와 증언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과 각종 전기 등을 수록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부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옥중에서 쓴 각종 휘호를 정리해 수록했고, 중국에서 발했되었던 《민우일보》에 실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사설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을 게재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100여 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총과 칼이 ‘자본’이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강대국은 약소국을 위협하고 그들의 이익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100여 년 전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논리거나 이상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은 분명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위약으로《동양평화론》을 끝맺지 못한 채 순국했다. 다시 말해《동양평화론》의 완성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해방 후 양민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 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위서》《白凡 金九全集》(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박열 평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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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평전
▸ 분야 : 인문/역사 
▸ 지은이 : 김삼웅
▸ 판형 : 4*6변형(120*188) 양장
▸ 쪽수 : 596쪽
▸ 가격 : 17,800원
▸ 발행일 : 2009년 2월 5일
▸ ISBN : 978-89-5940-136-9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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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창 리뷰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20세기 최고의 독립운동가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약산 김원봉 선생. 그는 일제 관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렸다던 의열단을 창단하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의열단장,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장, 조선민족혁명당 당수, 조선민족전선연맹 대표,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인민공화당 대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 그가 역임한 직위만도 10개가 넘는다.
광복 뒤 환국한 조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테러의 위협과 정치적인 모략이었다. 그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좌우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고, 이승만 세력에 빌붙은 친일 세력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는다. 결국 김원봉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1958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도 그의 설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우파의 김구 선생과 함께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역사 속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한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모략 속에서 그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왔기 때문이다.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
약산 김원봉은 남한과 북한 정권으로부터 ‘반역자’ 취급을 받고 철저히 배척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인 의열투쟁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록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약산 김원봉을 다룰 때는 보통 ‘픽션’ 형태를 취하거나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삼웅은 30여 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약산 김원봉의 삶을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했다. 의열단 창단의 의의,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집필 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실질적인 동기 그리고 월북과 그의 의문의 죽음 등 역사적인 사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재조명한 것이다. 이 책에는 일본 정보기관의 기록, 각종 증언록 등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약산 김원봉을 심도 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광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다. 김원봉의 월북과 의문의 죽음을 비롯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김원봉이란 존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한국현대사의 전면으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해방 후 양민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 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위서》《白凡 金九全集》(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박열 평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 등이 있다.

●  본문 중에서
김원봉은 자신의 생애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제1기생 졸업식에서 목 메이는 어조로 “강도 왜노를 몰아냄으로써 조선의 절대독립과 동삼성의 탈환을 기하자”고 역설했다. 1기생 졸업식에서 행한 김원봉의 훈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지들은 졸업 후에 차차 개별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입교 시기의 혁명적 정신을 잊지 말고 조국을 위해 크게 투쟁할 뿐 아니라, 6개월 동안 받은 교육을 기초로 삼아 공부와 연구를 거듭하여 진취적인 정신을 기르고 결사적인 투쟁을 계속하여 우리들의 강토에서 강도 왜노를 몰아냄으로써, 조선의 절대독립과 동삼성의 탈환을 기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혁명투쟁을 위해 헤어진 동지들이 최후에는 반드시 목적을 달성하고 기쁜 얼굴로 서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8장 중에서>

 1938년 10월 10일 오전, 한구 중화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의용대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결성식에는 100여 명의 대원이 자리잡았고 각 지역에서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한국인과 중국의 군·정 관계 요인들이 참석했다. 대장으로 추대된 김원봉은 제1지대와 제2지대의 지대장에게 각각 군기를 수여하고 ‘朝鮮義勇隊조선의용대’라는 한자 다섯 자와 ‘Korean Volunteer한국의용군’라는 영문이 새겨진 배지를 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대원들은 태극기와 군기를 앞세우고 당당하게 김원봉 앞에 도열했다. 김원봉은 대원들에게 “중국혁명이 완성되지 못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에 대한 압박과 착취가 날로 심하며, 한국민족이 해방되지 못함으로써 일제의 중국대륙 침략이 더욱 포악해졌음이 사실이다. 조선의용대의 기치를 높이 들고 중국 형제들과 굳게 손잡고 최후의 일각까지 분투하자”고 역설했다. 또 “우리의 역량이 작다고 깔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3000만 민중은 모두 우리의 역량”이라는 김원봉의 연설은 대원들의 가슴을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조선의용대 대원들이나 내빈 그리고 주역인 김원봉에게 무장부대의 창설은 생애를 두고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행사가 되었다. 비록 남의 나라 땅이지만 당당하게 무장한 군사력을 갖춘 조선의용대가 출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1장 중에서>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김원봉의 존재가 대단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김원봉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는 황용주(전 MBC 사장)의 증언 등을 종합할 때 두 사람의 사이, 그 내면의 관계는 ‘빙탄불상용’과 같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이미 남로당계 인사들과 연안파 독립운동가들을 숙청한 바 있다. 이제 김일성의 절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인물은 연부역강한 김원봉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숙청되었을지 모른다.
숙청 과정에서 자결이냐 살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은밀하게 살해됐을 수도 있고 옥중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자살을 택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되었을 수도 있다. <16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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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산 김원봉 평전
분야 : 인물/평전
지은이 : 김삼웅
판형 : 4*6변형(120*188) 양장
쪽수 : 656쪽
가격 : 16,500원
발행일 : 2008년 2월 11일
ISBN : 978-89-5940-092-8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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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애는 망국 시대에 모든 것을 바쳐 일제와 싸운 처절한 혁명가의 삶이었으며, 오로지 일제 타도와 조국 해방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선생은 일제 타도를 위해 언론․문학․사학․대종교․아나키즘․의열단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싸웠으며 오늘날 각 분야의 큰 업적을 남겨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공정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민족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는 지금, 선생은 이미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찬란한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고 복원하였다. 오늘 우리가 선생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다시 더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 시대의창 리뷰
“아와 비아의 투쟁적 삶을 살다간 고결한 혁명가”
독립운동사에서 단재 선생만큼 남북한 공히 존경받는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에서 독립투사들의 이념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선생만은 자신이 남긴 업적만큼이나 위대한 혁명가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한이 전쟁을 치룰 만큼 한쪽의 역사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아직도 선생의 국적조차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책 <단재 신채호 평전>은 단재 선생의 생애를 연구하고 선생의 발자취를 끊임없이 찾아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던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발로 쓴 역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실제 저자가 몇 차례 뤼순 감옥을 방문해 입수하게 된 선생의 감옥 입소 때 찍은 사진을 게재했으며, 잡지 <천고>의 2권을 연변에서 입수해 최초로 국내 언론에 소개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선생의 국적회복은 물론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흩어진 단재 선생의 자료들을 모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출간하자고 호소한다.

단재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자신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일컬었던 역사의 정의만큼이나  치열하게, 또는 고뇌하며, 고결하게, 한점 흐트러짐 없는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또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선생이 남긴 업적 또한 오늘날의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단재는 사학자로서 민족사학의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국 고대사 복원은 물론 잘못된 역사의 과오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이러한 단재사학의 가장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낭가사상’은 민족사상의 기원, 전승, 기능을 구명하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근대적 자주독립정신을 세워 민족의 진로와 시대정식을 밝히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선생이 남긴 <조선상고사> 등 수많은 저작물들은 오늘날 역사 연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단재는 결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겠다. 선생은 일찍이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을 뿐 아니라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의 후반부 원고 집필을 도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방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통렬히 비판하는 논설과 사설들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이 시기 애국심과 자강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해외 역사 서적을 번역(<이태리 건국 삼걸전>)하고 한국 사상의 영웅전(<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선생은 망명길에 올라서도 <대동공보>에 관여하고 <권업신문> 주필로도 활약했다.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항일신문 <신대한>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개인잡지 <천고>를 발행, 중국인과 한국인을 결속하는 항일투쟁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열정을 불태웠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단재는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혁명가였다. 「의열단선언문」으로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은 일제 시대 수많은 독립 선언문 중에서 내용과 문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생은 이 선언문에서 폭력에 의한 민중의 직접혁명을 부르짖었다. 또한 고급 밀정 김달하를 처단했던 다물단의 선언문도 집필했으며, 단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조선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로서의 단재는 “지배계급이 민중들을 억압하거나 민중들을 속여 자신들의 지배에 복종시키고 혁명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이용하는 지배계급의 일체의 지배기관이나 수단은 파괴되고, 지배계급이 제정한 일체의 사회제도도 철폐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사유재산제도 부정되고 모든 재화의 공유제가 실시되어 일체의 착취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선생의 이러한 사상적 변화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지만 민족주의의 발전된 단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선생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을 실어 아나키스트 신채호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단재 선생이 서거한 지 7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친일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늦은 감은 없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청산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죽어라 독립운동해서 나라 찾았더니 친일파에게 진상한 꼴”이 되었다고 통탄한 바 있다. 자칫 이번 청산 작업에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엉뚱한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 이것은 선생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 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백범 김구 전집』 (12권, 공저)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저)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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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516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5년 8월 15일
ISBN : 89-5940-005-X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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